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가 코르부트 (문단 편집) === [[1972 뮌헨 올림픽]] === 부상이 아문 뒤 17살의 나이로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수준급의 체조 실력과 묘기를 선보였다. 평균대, 마루, 단체 종합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을 하고, [[https://youtu.be/m9aFvxz_jso|이단평행봉]]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특히 평균대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기술은 '''그녀가 최초로 선보여'''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말하자면 4년 후 나디아 코마네치에 해당하는 체조요정이 되었던 셈이다.[* 코르부트 플립을 국제무대에 처음 선보인 건 71년 유럽선수권에서였던 것 같다. 미국의 체조잡지에 "시범 경기에 나온 어느 어린 러시아 여자아이가 상단봉에 올라서서 뒤로 플립을 한 후 상단봉을 잡고 하단봉에 몸을 말아 돌렸다"라고 코르부트 플립을 본 것을 인상깊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종합까지는 다 잘했는데, 이단평행봉 경기에서 시작부터 발이 땅에 걸려 삐그덕대더니 끝날 때까지 이런 큰 실수를 3번이나 해버렸고 이 경기로 1위에서 7위까지 추락해 메달이 날라갔다. 결국 개인종합 [[금메달]]은 동료인 루드밀라 투리스체바에게 돌아갔고[* 투리스체바는 코르부트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기뻐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팀동료의 실수에 저렇게 내놓고 좋아하는지 당황해 했다. 이후에도 투리셰바는 수십 년에 걸쳐 올가 코르부트에 대한 지속적인 적의를 보였다.], 본인도 많이 속상했는지 평행봉 경기가 끝난 뒤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또한 그녀가 이단평행봉에서 받은 은메달은 아직까지 체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바로 그녀가 선보인 '''코르부트 플립'''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이단평행봉에서 뒤로 도는 기술을 아무도 선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봐도 고난도 기술이다. 한마디로 극강의 초고난도 기술이었으며 역동적이고 획기적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바로 다음 해에 국제 체조 연맹에서 '너무 많은 선수들이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는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금지시켰을 정도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코르부트는 그런 기술을 조금의 흠도 없이 완벽하게 경기했다. 당연히 모두가 '당연히 금메달이겠거니'라고 생각했지만, 점수판에 점수가 발표된 뒤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벽한 초고난도 연기를 펼쳤는데도 9.8점[* 10점이 만점이며, 현재는 만점제도가 폐지되었다.]이 나와 그 전에 경기한 9.9점을 받은 [[동독]]의 카린 얀츠에 밀려 은메달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심판을 향해 야유를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그대로 얀츠가 금메달, 코르부트가 은메달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기술을 완벽히 연기한 것치고 너무 점수가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왜 올가 코르부트가 최초의 체조 만점자가 아닌지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도 많다. 전후사정을 알면 판정 이유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판정으로 금메달을 가져간 카린 얀츠는 사실 올림픽에서 편파 판정의 피해를 많이 본 선수였다. 직전 올림픽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프라하의 봄]]으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에게 침공을 당했다. 그에 대한 동정표였는지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라 차슬라프스카가 이 대회에서 상당히 후한 판정을 받는데, 덕분에 얀츠는 이단평행봉 금메달을 억울하게 뺏겼다. 그리고 이 72년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지는데, 체조 경기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메달인 개인종합은 내용상 [[타마라 라자코비치]]와 카린 얀츠의 양자 대결이었는데, 엉뚱하게 코르부트의 팀동료 류드밀라 투리셰바가 가져 가면서 얀츠는 또 판정으로 금메달을 뺏긴 모양새가 됐다. 이단평행봉 경기 판정 시점에서 '어제' 벌어진 일이었다. 이쯤되면 심판진들도 동독과 얀츠에 대한 심적 부채감이 있었을 것이다. 보상 차원에서, 소련 선수인 코르부트의 점수를 고의로 낮게 줌으로써 얀츠가 실수만 하지 않으면 금메달을 가져갈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심판진 내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wiki style="margin:-5px -10px -6px" [[파일:external/www.mediastorehouse.com/olga-korbut-in-tears-at-the-1972-munich-olympics-6227003.jpg|width=100%]]}}} || 개인종합 메달은 놓쳤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1972 뮌헨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그리고 파격적인 기술과 깜찍한 외모, 매력적인 웃음 등으로 뮌헨 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으며, ‘뮌헨의 달링’ 이라 불리우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 인기를 증명하듯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과 만나기도 했다. 같은 해에 [[AP통신]]에서 발표한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